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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6 절박함에 관하여









뭔가 절박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절박한 상황이 오면 나중을 위해서 남겨놓은 카드를 하나 하나 열어서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거나 힘든 상황을 일시적으로 나마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면 섣부른 판단일 때가 많아서 아까운 카드를 낭비했음을 깨닫고 후회하곤 한다.

나에게는 절박하다고 느낄때 아직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떠올리는 상황들이 몇가지 상황들이 있다.



그 첫번째는 잭런던(Jack London) 의 모닥불(To Build A Fire) 이라는 단편소설이다. 무라까미 하루끼님이 소설이나 수필에서 몇 번 언급하기도 해서 조금은 유명하기도 한 이 소설의 주제는 절박함이다. 영하 30-40도가 넘는 추위에서 마지막 남은 몇 개의 성냥으로 어떻게든 불을 피우려고 애쓰지만 두꺼운 장갑때문에 성냥을 긋기가 어렵다. 장갑을 벗었더니 바로 손이 얼어버려서 성냥을 놓치고 만다. 입으로 성냥을 물어 부싯돌에 그어보려고 했지만 콧바람때문에 망치고 만다. 데려온 개는 주인이 곧 죽을 것임을 느끼고 자기라도 살려고 발버둥친다. 개를 죽여서 뜨거운 시체속에 손을 넣어 녹여보려고 하지만 몸이 너무 얼어서 개를 제압할 힘이 없다. 이러한 절망적인 모습을 정말 잘 묘사해서 그 모습이 상상이 될때마다 정말 오싹해지곤 한다.



두 번째도 역시 잭런던의 삶을 향한 사랑(Love of Life) 이란 단편소설인데 잭런던은 북극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다보니 절박한 내용들이 많다. 삶은 향한 사랑은 알래스카 골드 러쉬에 참여 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외딴 산속에서 금을 찾아내는 대는 성공했으나 다시 도시로 돌아오다가 굶주림과 늑대들에 의해 죽기 직전의 상황까지 가는 내용이다. 추운 알래스카 산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풀뿌리나 민물고기라도 먹어보지만 질기고 쓰고 아무런 영양분도 들어있지 않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너무 힘이 없어서 웅덩이의 더러운 물을 겨우겨우 뎁혀서 그 물이라도 마셔가며 삶을 연장한다. 결국에는 네 발로 기어서 간신히 해변에 도달하게 된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이 상황에 비교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게 될 때가 많아서 정말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세 번째는 헐리웃 영화 127시간이다.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평가는 여러가지로 나뉜다. 나 같은 경우는 정말 매우 감명깊게 본 영화인데,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자기 손으로 자신의 팔을 잘라낼 때는 징그럽게나 잔인하기보다는 정말 아름답고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에게 그 장면은 인간이 인간 본연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솔직히 같은 상황이 왔을 때 잘 들지도 않는 칼로 수백번 그어서 나의 팔을 잘라낼 수 있을지 정말 자신이 없다. 먹지도 못해 힘도 없을테고 기력도 하나도 없을텐데 정신을 차리고 팔을 잘라내야 하는 상황은 절박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상황일 것이다.







(프랑스 국립 릴1대학 기숙사의 학생식당. 학생식당이라 저렴하게 2.5유로정도 했던것 같은데 당시에는 너무 돈이 없어서 그 돈을 내지 못해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네 번째 다섯 번째는 위의 3가지와 비교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상황이지만 직접 겪은 상황이라는 면에서 개인적으로 좀 더 와 닿는 면이 있긴 하다. 벌써 8년전이 되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프랑스 북부의 릴이란 도시의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대여섯 달정도 고생끝에 어느 정도 적응은 했지만 이 작은 도시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는 판단이 들었나보다. 그래서 과감하게 모든 짐을 싸들고 빠리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인터넷에서 레스토랑의 일자리를 알아보고 연락이 되어서 간 것이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상 그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Quatre Septembre역 근처의 큰 대로변 버스정류장으로 기억한다. 버스정류장의 작은 벤치에 캐리어와 가방등 모든 짐을 올려 놓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정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숙식도 레스토랑에서 제공하기로 했었고 릴에서는 대학의 기숙사에서 지냈었기 때문 해외의 호텔같은 곳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어떻게 되어서 방도 구하고 이삿짐도 나르고 슈퍼에서 박스도 나르고 해서 결국 빠리에 적응을 한 것은 기억이 난다. 그 후로는 운이 좋아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도 하게 되고 많은 좋은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기도 하고 좋은 일들이 많기도 했다.





다섯 번째는 이제 빠리 생활에도 지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나약한 심정에 빠지게 되어 한국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다른 대륙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아주 오래전에 잠시 알고 지냈던 친구가 토론토로 오라는 메일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 말만 믿고 바로 또 모든 짐을 싸서 비행기에 싣고 몬트리올을 경유해서 토론토까지 날아갔지만 도착하니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무슨 전철역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밤 11시쯤이었는데 근처에 호텔이 어디 있냐고 역무원에게 물어도 모른다며 전철역 닫을 시간이 되었으니 나가라는 소리만 할 뿐이었다. 씻지도 못해서 더럽고 땀흘리며 무거운 가방을 여러개 끌고 다니는 동양인에게 그럴 만도 했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긴 했다. 이 때는 그래도 대로변이 아닌 근처 서브웨이에 들어가서 샌드위치와 콜라를 시키고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때도 참 눈 앞이 깜깜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Park Fort Mason, 2012)




힘든일이 생길때 마다 잭런던의 소설을 떠올리기도 하고 127시간의 커다란 돌덩이 그리고 빠리 대로변의 정류장, 흐렸던 하늘 그리고 토론토 서브웨이에서의 어둑어둑한 가게밖의 모습과 난처함을 생각해내면 그래도 그때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란 결론을 내게 된다.


낙천적으로 생각하려는 노력을 열심히 한 덕인지, 힘든 일이 생길때마다 이것들은 언젠가 유용한 약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과거의 어려웠던 일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면 많은 두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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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y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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